본문 바로가기

세상사

국가백년지대계의 관점에서 교육을 생각하자

전임 경제부총리가 교육부총리로 임명되었다.

얼마전, 도덕적인 결함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대학은 산업이라는 생소한 논리로 밀어붙여 임명 후 사흘 만에 그만두게 만들더니

이번에도 같은 논리로 경제통을 임명하였다 한다.

이에 관련 교육단체 모두가 반발하고, 교육계 전반의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혀 있다.

현 대통령이 교육전문가가 아니고, 교육에 대한 자신만의 비전이 없다 하더라도,

국민 대다수는 그것을 큰 문제점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그 분야에 정통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은 그 분야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아,

이를 바탕으로 국민 전체의 컨센서스를 이끌어 낼 책무가 있다.

지난번과 이번 사건 공히 그러한 절차가 무시되었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교육관련단체들이 모두 반발하고, 교육계 전반이 반대하고 있는데

어떻게 국민들의 컨센서스를 모아

제대로 된 교육정책이 시행될 수 있겠는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의 가장 기본은 바른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인생관과 국가관을 가진 바른 사람이 될 때 비로서

고립무원의 처지에서도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장군과 같은

훌륭한 인재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바른 사람의 표본이 되어야 할

교육의 수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교육의 근본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사리 자명한 이러한 일을

그 근본은 생각하지도 않고, 부차적인 이유를 내세워

교육계의 중지마저도 무시하였던 일이

지난 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하겠다.

이번에도 동일한 일이 다시 벌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전임 경제부총리를 임명한 이유는

대학의 경쟁력이 우리의 산업을 좌우하기 때문에

그러한 대학의 개혁에는 경제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논리인 것 같다.

그러나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대학개혁을 경제전문가만이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은 논리의 지나친 비약이다.

우리의 대학이 경쟁력이 있을 때,

우리의 산업을 잘 뒷받침할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대학과 산업이 그러한 연관성이 있다고 하여,

최상의 대학교육체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경제전문가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대학교육에 대하여 문외한인 사람이 어떻게 훌륭한 대학체계를 만들 수 있겠는가?

대학은 직업학교가 아니다.

경쟁력있는 대학이란 훌륭한 학문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 가능하다.

2류 3류의 학문적 경쟁력을 지닌 대학을

그 누구도 뛰어난 경쟁력을 지닌 대학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직업학교라면 그러한 논리가 성립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학문적 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을

교육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 잘 할 수 없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우리 대학들의 학문적 경쟁력의 취약점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대학교육과 관련된 전문가만이 그러한 일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개혁이 현재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가장 시급하고도 가장 중요한 문제인가?

국민의 절대 다수는 그 문제가 “공교육의 정상화”라고 할 것이다.

즉, 초중고 교육의 정상화이다.

현재 우리의 초중고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전쟁이다.

20-30대의 절반이상이 절망적인 교육환경에 실망하여,

자녀교육을 위해 이민을 희망하고 있다.

40대도 경제적 능력과 여건만 된다면 기꺼이 기러기 아빠가 되고 있다.

고2로 올라가는 아이를 둔 학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입학 첫해인 1학년 때부터

완전한 입시전쟁터에서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다.

활발히 운동하여 기초체력을 다지고,

좋은 책을 많이 읽어 마음의 양식을 쌓아야 할 시기에

학원 및과외와 야간자율학습에 얽매여,

운동을 하거나 교과와 관련없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미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듯하다.

책을 읽지 않아 바른 생각과 지혜가 부족하고, 기초체력이 약한 우리의 2세들이

장차 대학과 사회에서 어떻게 창조적이며 바른 생각으로

힘든 일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보다 더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공교육의 정상화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신임 교육부총리는 공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비전은

가지고 있지 않아 보인다.

다시 대학개혁만 놓고 보더라도, 이는 산업정책적 측면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흔히 드는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우리의 교육부와 같은 존재에 의하여

개혁된 것이 아니라,정부에서 대학에 많은 연구비를 지원하고

이에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연구를 활성화시켜서

기업에서 요구하는 능력있는 인재들을 육성하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들도 이미 치열한 경쟁체제에 들어가 있다.

대학구조조정은 이미 필연이 되었다.

정부에서 구태여 간섭하지 않더라도 연구비를 충분히 지원하고,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보조하여 준다면

우리의 대학들은 스스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통령까지도 대학은 곧 산업이라고 하면서,

막상 정부에서 행하는 정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던 지방대 육성을 위해

작년부터 누리사업에 5년간 년 3000억원의 지원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는 주로 선정된 분야 학부학생들의 장학금이나 연수 및 학과의

시설투자에 쓰이며 정작 대학연구의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

반면에 대학의 경쟁력을 좌우할 기초학문 연구지원예산은

상대적으로 크게 작다.

우리 대학들의 기초학문 연구지원을 총괄하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지원규모는

누리사업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한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통상 1-2대 1이던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지원 선정율은

현재 4-5대 1이 넘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컨대 지난해 신진교수연구지원의 경우 4대 1이었다.

이는 연구능력이 왕성한 신임교수들 4명중 3명이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했음을 뜻한다.

연구비가 없으면 대학원생도 받을 수가 없으며,

연구실 역시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다.

필자가 신청한 바 있던 (일반)협동연구는 무려 10대 1이었다.

대학경쟁력의 원천이라할 대학의 연구도 제대로 지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대학개혁 운운할 수 있는가?

무리한 논리로 문외한을 교육의 수장에 앉혀

우리의 교육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순리대로 원칙과 근본에 충실하여,

공교육의 정상화와 진정한 대학개혁을 이루는데 가장 적합한 사람을

교육의 수장으로 임명하여

무너지기 직전의 우리 교육을 바로 잡아야만 할 것이다.